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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일본에서 글로벌을 실감한 한국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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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언젠가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어 외제 차를 타고 다니며,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아 들고 고층 건물에 있는 럭셔리한 인테리어의 사무실에서 영자 신문이나 잡지를 읽으며,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노랑 머리 외국인들과 일하는 글로벌한 삶을 살 거라고 상상했다. 아마 디자이너들 대부분이 한 번쯤 해외에서 일하고 싶은 로망을 가질 것이다. 나는 네이버가 일본 검색 사업에 진출하면서 도쿄로 건너가 3년 6개월째 거주하며 디자인을 하고 있다. 일본에 오기 전까지 한 번도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없지만 해외에서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용기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에는 디자인 실력이 있고 좋은 제품을 만든다면 해외에서도 통용되는 디자인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몇 년을 살아보니 일본이란 나라는 뭔가 여러 가지로 좀 달랐다. 잘 만든 글로벌 제품이나 서비스가 반드시 성공하지는 않았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나 분위기가 존재했다.
일본은 원래 디자인 전 분야에서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음에도 IT나 인터넷 기업에서 디자이너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웹 디자인이나 UI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도 많지 않았다.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은 이미 좋은 조건으로 광고나 브랜드 컨설팅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로 일하고 있어서 좋은 디자이너를 채용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시장 상황도 좋지 않았다. 절대 강자 구글과 야후가 일본 검색 서비스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일본 진출이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일본에서 네이버라는 브랜드의 경쟁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많은 서비스에서 달라 보이게 디자인했다. 2010년 일본 웹디자인협회(JWDA)의 최고 대상과 일본 굿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면서 이런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사업적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장점유율과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애플과 구글에 의한 스마트폰 시장의 활성화는 돌파구와도 같았다. 한참을 따라가도 전혀 보이지 않았던 PC시장과 다르게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스마트폰 시장 상황은 정말 큰 기회였다. 1년간 30여 종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고 성장하면서 늘 한편에서 고민해왔던 일본의 문화적인 특성이나 UI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2011년 3월 11일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이 일본에서는 흔한 일이라 태연하게 사무실에 앉아 있었는데 23층인 사무실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 직원들은 책상 밑으로 머리를 감싸고 숨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고층 건물들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TV에서는 쓰나미가 몰아쳐 도시를 덮치는 장면이 긴급 속보로 전해졌고, 이러다가는 정말 건물이 무너져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전화와 교통은 마비된 상황이었다. 단절된 통신 상황에 당황한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와 메신저였다. 이 일을 겪고 난 후 일본 시장에 맞는 메신저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4개월의 진통을 겪고 나서야 네이버 재팬의 메신저 서비스 ‘라인’이 출시됐다.
일본에서 시작한 메신저 서비스 라인은 깔끔한 디자인, 감정을 담은 스티커, 무료 음성 통화를 무기로 입소문을 타고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일본에서는 TV 광고를 시작했고, 오픈 8개월 만에 17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18개국의 앱 스토어에서 1위도 달성했다. 홍콩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라인의 이모티콘 캐릭터를 따라 할 정도다. 이달부터는 대만에서도 TV 광고가 시작된다. 매일 영어, 아랍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각종 업무 메일이 날아든다. 일본에 사는 한국 디자이너로서 이제야 글로벌을 실감하고 있다.

김성훈
싸이월드와 네이버에서 한때 가장 유명했던 서비스들을 디자인했다.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후 싸이월드, 디스트릭트의 전신인 뉴틸리티 등을 거쳤으며, 현재 NHN 이사로 도쿄에서 네이버 재팬의 UX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www.uxjames.com


디자인하우스 (2012년 3월호) ⓒ Desig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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