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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사무공간이 된 19세기 공장
디 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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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모두 그대로 노출시킨 내부 공간.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100여 년 전 공장에서 사용하던 ‘공장 조명’이다. 여기에 있는 조명등은 모두 배상필 대표의 수집품이거나 그의 손안에서 다시 태어난 제품이다. 가운데 커다란 테이블도 그가 직접 만들었다.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1가 36-4. 카페 ‘디 오피스’의 주소다. 명륜칼국수, 우리밀국시, 혜화칼국수 등 저명한 칼국숫집이 모인 혜화로터리 안쪽 골목길이 초행인 사람이라면 내이게이션에 의지해 찾아가는 것이 나을 정도로 구석진 곳이다. “대로변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대다수가 뜨내기이지만, 이렇게 한적한 곳까지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마니아일 겁니다. 초반에 고생을 하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배상필 디 오피스 대표의 말이다. 문방구와 구멍가게 슈퍼가 여전히 건재한, 오랜 주택가에 자리한 ‘디 오피스’는 낮에는 카페, 밤에는 와인 바다. 외식 공간이 분명하거늘 ‘사무실’이란 모순적인 이름을 붙인 까닭이 궁금하다. “사실 이건 연극 연출가인 아내 마리옹의 아이디어예요.” 뉴욕에서 연극 오디션을 보면서 연출가와 배우라는 상반된 입장에서 처음 만났다는 이 부부는 남편의 조국인 한국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다. 당연히 100여 개의 소극장이 밀집한 대학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 대다수의 소극장은 무대 마련에 급급해 연극을 기획하고 준비할 사무 공간이 부재했다. 이런 속사정이 안타까웠던 부부는 연극인에게 편안한 회의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확장한 개념이 바로 ‘디 오피스’. 집이나 회사가 아니라 제3의 공간에서 업무를 하길 원하는 코피스(coffice)족도 타깃이다. ‘더운 날에 은행 간다’는 옛말을 무색케 하는 이 신조어는 커피와 오피스의 합성어다. 이제 사람들은 냉난방이 확실하고 와이파이가 활성화된 커피 전문점에서 ‘일’을 한다. 월 15만 원인 ‘디 오피스’의 멤버십에 가입하면 개인 사물함도 지급한다. 팩스, 복사기, 스캐너 등 기본 사무기기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회의실도 예약제로 사용 가능하다. 간소하나마 사무 공간의 꼴을 갖췄다. 그러나 카페 ‘디 오피스’의 내부 인테리어는 독특하게도 수십여 개의 조명등으로 가득하다. 배상필 대표가 미국, 유럽 등지에서 15년 이상 모아온 100여 년 넘은 ‘공장 조명’이다. 뿜어내는 기운이 남다른 이 빈티지 조명등은 단순한 수집품이 아니다. 그가 직접 여러 빈티지 조명등을 재조합해 새롭게 선보이는 디자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이 쓰던 조명등, 전구가 발명되기 전 가스 불로 환자의 입안을 볼 수 있는 스포트라이트를 개발해 특허를 받았던 치과의사 O.C. 화이트(O.C. White)의 조명등 등 진기한 이야기가 담긴 빈티지 조명은 그의 손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가게 안에 놓인 대형 테이블이나 철제 의자도 모두 그가 만든 제품. 조명등은 그 자체로 오브제적인 성격이 강한 아이템이다. 그렇기에 “공간은 배경이 되어야 했다”고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은 김본낭 라이프스타일 101 소장은 말한다. ‘공장 같은 카페’를 원했던 배상필 대표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업무를 볼 수 있는 열린 ‘디 오피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손님은 알게 모르게 그의 디자인을 접한다.

작은 가게 디자인하기
서울시가 도시를 세련되게 만드느라 야단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랜드마크가 될 건물의 디자인을 의뢰하고 있다. 이런 기념비적인 건물은 분명 도시의 명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모여 있는 가장 흔하고 가장 수가 많은 상점이 바뀌어야 도시가 정말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은 상업 공간의 디자인 수준이야말로 그 도시의 디자인 경쟁력이 된다. 대기업의 CI처럼 작은 가게에도 일관된 디자인 개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디자인한 수천, 수만 개의 가게가 도시를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이 코너에서는 서울을 변모시키는 ‘디자인’한 상업 공간을 소개한다.

가게 정보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1가 36-4
(02)747-0606, www.theoffice-seoul.com

(왼쪽) ‘디 오피스’의 시각 아이덴티티는 배상필 대표가 직접 디자인했다. 콘센트 모양으로 ‘사무실’이란 특징을 친근하게 살렸다.




"배상필 대표가 보여주는 조명 디자인 중에는 약간 그로테스크해 보일 정도로 복잡한 제품도 있었다. 그렇기에 인테리어 디자인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간까지 복잡하면 충돌할 테니까. 금속과 노출 콘크리트 같은 재료의 강한 느낌을 완화시키고자 부분적으로 나무를 사용했다. 기본적으로 깨끗하게 정리만 하면 되었기에 힘든 부분은 별로 없었다. 주방과 화장실처럼 기능적인 공간이 잘 돌아가게만 하면 되었다."
김본낭 라이프스타일 101 소장 

김본낭 라이프스타일 101 소장 김본낭 소장은 20년 넘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해온 고수다. 페이퍼가든, 알로 페이퍼가든, 두지엠 등 화려하지는 않으나 여유로운 감성이 묻어나는 공간을 선보였다. 2006년에는 자작나무 합판을 주재료로 하는 가구 브랜드 ‘플라이(PLY)’를 론칭했다. 도장을 최대한 배제하고 소재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디자인을 추구한다. 최근에는 NHN의 신사옥 그린팩토리 작업에도 참여했다. www.lifestyle101.co.kr

1 야간에 본 ‘디 오피스’ 외관. 조명이 워낙 많아 그 외의 요소는 모두 깔끔하게 처리했다. 따로 형광등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밤에 보는 ‘디 오피스’가 더 아름답다는 것이 가게 주인의 귀띔.
2 개인 사물함이 놓인 회의실 공간. 막 산업화에 들어선 공장 한 편의 모습 같다. 조명등뿐만 아니라 망치, 끌 같은 도구도 놓여 있다.


이 가게에 가면 있습니다
뉴욕에 머무르던 시절 조명이 필요해서 티파니 램프를 거금 1만 달러에 구입했으나 금세 싫증이 났다는 배상필 대표는 이때 자신이 선호하는 디자인 취향에 대해 자각했다. 미국, 프랑스 등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플리마켓을 돌며 ‘공장 조명’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 그렇게 모은 조명등에는 갓이나 받침이 하나씩 빠진 제품이 많았다. 이를 조합하다 보니 단순히 빈티지나 앤티크로 치부할 수 없는 조명등이 탄생했다. ‘디 오피스’에는 오래된 조명등을 새로 짜 맞춘 그의 조명 디자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전시뿐만 아니라 판매도 한다. 또한 와인 바인데 막걸리도 취급한다. 프랑스에서 와인은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적인 술인데, 한국에서는 ‘고가’로 매매되는 것에 경악했다는 그. 편하고 저렴한 막걸리는 한국의 와인이라는 소신으로 소백산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다. 한 병에 1만 원이며 걸쭉하기보다 맑다. 오랜 유학 생활로 다져진 그의 요리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샌드위치, 피자, 파전 등의 음식도 깔끔하다.

1 철제 구조에 가죽을 입힌 의자. 배상필 대표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2, 3 오랜 유학 생활로 다져진 그의 요리 솜씨는 홈메이드 샌드위치와 피자에 유감없이 발휘된다.
4 ‘한국의 와인’ 막걸리. 소백산에서 공수해 온다.


사소한 디자인이 남다릅니다
메뉴판, 명함, 펜, 꽃병, 이쑤시개 같은 사소한 물건도 함부로 디자인하면 안 된다.
이것 역시 전체 디자인 계획에 포함시켜야 최종적으로 디자인이 완성된다.

1, 2 그가 오랫동안 수집해온 빈티지와 앤티크 소품을 이용한 화장실 문. 수도꼭지나 다리미를 문고리로 단 상상력이 유쾌하다.
3 칸칸이 정리 잘된 메뉴판은 명함집에서 영감받은 디자인. 손으로 만드는 거라면 뭐든 좋아한다는 그는 가죽을 이용해 이 메뉴판도 장정했다.
4, 5 그가 수집해온 조명등.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실용적인 디자인이다.


INTERVIEW 배상필 디 오피스 대표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내 작업도 관람한다.”

주택가라 찾기 힘들 것 같다. 명륜동이지만 안쪽 주택가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마니아다. 초반에 고생할 것을 각오하고 멀리 보고 일부러 이곳에 자리 잡았다.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이유도 컸다. 시끄러운 큰길 가에서 매연 마시며 커피 마시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단골은 많은 편이다.

처음에 빈티지 조명등을 수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앤티크 가구 수집가인 형을 따라서 처음에 빈티지 조명등에 매료되었다. 수집도 쇼퍼홀릭과 같은 경향이 있다. 하나 꽂히면 더 파고들고 싶어지니까. 알면 알수록 자기가 더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혼자 공부하면서 바우하우스를 알게 됐는데, 고작 14년을 존재했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의 원형을 만든 대단히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닌 거라 생각한 제품도 처음에 디자인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바우하우스에서 나온 조명등은 실용성이 강조된 디자인이다. 이렇게 기능적인 디자인을 좇다가 ‘공장 조명’에 푹 빠지게 됐다. 기능을 그대로 노출한 디자인이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철제가 재료인 조명등이라 내가 조금씩 변형하면서 자연스레 조명 디자인까지 하게 되었다.

멤버십이 있는 걸로 안다. 이에 대해 설명해달라.
‘디 오피스’는 사실 아내의 생각에서 출발한 공간이다. 카페 주인들이 노트북을 가져오는 사람을 못 들어오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그 반대로 가자는 개념이었다. 실직자가 들어와서 오래 죽치고 앉아 있으면 테이블 회전율이 낮을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차라리 멤버십을 받자고 했다. 월 15만 원이면 아침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이곳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고정된 자리 없이 원하는 곳에 그날그날 앉으면 된다. 음료는 10% 할인한 가격에 제공한다. 기본 사무기기도 갖추고 있다. 편하게 각자 업무를 볼 수 있다.

어떤 공간이 되기를 원했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창고나 공장 느낌을 주고 싶었다. 숨기는 것 없이 전부 다 노출하고 싶었다. 여기 있는 가죽 의자와 철제 테이블도 내가 제작한 거다. 파리에서 너무 갖고 싶은 대형 테이블을 봤는데, 6000만 원이나 하기에 직접 만드는 게 낫겠다 싶어 해봤다. 처음에는 내 작업실 겸 전시 공간을 원했으나 사무 기능을 갖춘 카페를 추가해 자연스레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내 작업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디 오피스’ 2호점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올해 안에 내고 싶지만 ‘디 오피스’ 1호점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은 뒤에야 가능할 것 같다. 현실적으로는 내년 5월을 예상하고 있다. 아내가 프랑스 사람이기에 파리에서 처제가 운영할 계획이다. 돈 없는 예술가나 프리랜서에게 공간을 지원한다는 개념이다. 여기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가능할 것 같다.



디자인하우스 (2010년 9월호) ⓒ Desig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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