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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리테일 디자인의 대가
카번 데일
파리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카번데일(Carbondale)은 명품 브랜드의 리테일 디자인 대가로 인정받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루이비통(Louis Vuitton), 셀린느(Celine), 태그호이어(Tag Heuer), 티파니(Tiffany & Co.) 등 카본데일의 고객들은 하나같이 대어급이다. 더구나 고객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 카번데일을 설립한 에릭 칼슨(Eric Carson)을 만나 ‘고객 관리 비법’을 직접 들어봤다.

루이비통 도쿄 롯폰기 매장 입구 모습. 자연스레 2층으로 올라가는 동선을 유도한다. ⓒJcohrssen

파리의 패셔니스타들이 즐겨 찾는 에티엔 마르셀 지역의 끝자락에 위치한 빅투아르 광장(Place des Victoires)은 고즈넉하면서 여유로운 곳이다. 번잡하지 않으면서 시내 접근성도 좋아 고급 부티크가 많다. 카번데일 사무실은 이 광장 모퉁이에 있는 건물 2층에 있다. 파리에 있는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로는 드물게 단독 출입구도 있다. 사실 에릭 칼슨은 미국인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캘리포니아의 마크 맥(Mark Mack) 사무소에서 5년간 일했다. 바르셀로나의 오스카 투스케츠(Oscar Tousquets) 사무소와 로테르담의 렘 쿨하스(Rem Koolhaas) 스튜디오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 그는 무엇보다 성실하고 체계적으로 자신의 이력을 관리했으며 차곡차곡 경험을 쌓았다. 그가 파리에 첫발을 내딛은 건 1991년이다.

이후 6년 동안 여러 에이전시와 프리랜서로 협업하며 국제 공모전에 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욕조에 누워 긴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문득 고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는데, 때마침 루이비통에서 연락이 왔다. 루이비통 건축 디자인팀의 디렉터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구사하면서 일본에서의 실무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를 찾고 있던 루이비통에게 에릭 칼슨만 한 적임자가 없었다. 고급 시장이 급팽창한 2000년을 전후로 루이비통은 세계적으로 매장 수를 확대했다. 세계 주요 도시에 전략적으로 매장을 연 루이비통은 방문하는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이를 진두지휘한 사람이 바로 에릭 칼슨이다. 그는 1997년부터 장장 7년 동안 전 세계 루이비통 매장 디자인을 담당했다. 2004년 독립해 ‘카번데일’이라는 이름의 스튜디오를 차린 이후에도 루이비통과의 관계는 긴밀했다. 파리의 샹젤리제 플래그십 스토어부터 서울의 청담 매장, 일본 나고야의 미드랜드 스퀘어 매장까지 개장만 하면 화제가 되었다.

(왼쪽) 루이비통 도쿄 롯폰기 매장의 내부 모습. 카번데일은 브랜드 로고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는 데 비범한 능력이 있다. ⓒAno Daici


루이비통 나고야 미드랜드 스웨어 매장의 내부 모습이다. 드라마틱한 나선형 계단과 천장에서 쏟아지는 조명등이 화려하다. ⓒJcohrssen


카번데일이 명품의 리테일 디자인을 선도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카번데일만의 강력한 스타일이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은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분석하고 이에 부응하는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뿐이다. 에릭 칼슨에게 “카번데일의 디자인 특징이 뭐냐”고 물으니 “전문화는 죽음이다(Specialization is death)”라고 답했을 정도다. 카번데일이 브랜드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건 스튜디오에 근무하는 12명의 디자이너 전원이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독특한 작업 방식에서 기인한다. 카번데일은 또한 모든 요소를 매장에 맞게 특별 제작하는 ‘주문 맞춤(customization)’을 고수함으로써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에릭 칼슨이 명품 브랜드의 작업에 파묻혀 산다고 그를 단지 ‘고급스러움’만 좇는 속물일 거라 속단하지 않길 바란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최고급’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고객에 대한 이해와 존중, 그리고 이에 따른 정확한 결과물을 내놓은 데 있다. 그의 스튜디오 이름 ‘카번데일’은 그가 자란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 이름이다. 자신의 평범한 배경을 잊지 말자는 의도에서 택했다. 너무 오래 머문 나머지 파리가 이젠 자신의 집처럼 느껴지지만, 그는 여전히 일 년에 한 번은 카번데일을 방문한다. 자신의 소박한 시작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1,2,3 루이비통 샹젤리제 매장 내부 모습.(1 ⓒVincentKnap / 2, 3 ⓒStephaneMuratet )


루이비통 도쿄 오모테산도 매장 모습. ⓒAno Daici


명품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를 위해 스위스에 만든 360 박물관. ⓒJcohrssen


1, 2 뮌헨에 있는 명품 브랜드 에스까다 본사 모습. 황동빛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Jcohrssen
3, 4 루이비통 청담 매장 모습이다. 단독 건물을 온전히 진행한 첫 프로젝트였다. ⓒH.Ueda


에릭 칼슨 카번데일 대표

"트렌드를 짐작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솔루션을 찾을 뿐이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미국 출신 디자이너다. 파리에 정착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1991년 파리에 처음 왔다. 6년 정도 파리에 머물면서 여러 에이전시와 협업해 다양한 국제 설계 공모전에 참여했다. 파리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루이비통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해서 파리에 남게 되었다. 파리는 럭셔리 사업뿐만 아니라 건축, 예술, 문화 등 다방면에서 세계의 중심이다. 또한 수공예 장인들의 인프라도 충분해 작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카번데일을 대표할 만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카번데일 최초로 내부를 비롯해 외관까지 디자인한 루이비통 청담 매장이다. 단독 건물을 온전히 진행한 프로젝트로 기억에 남는다. 이 매장은 우리의 디자인에 새로운 문을 열어줬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매장은 루이비통 롯폰기 매장인데, 내・외부 공간뿐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가구까지 모든 요소를 우리가 직접 디자인했다. 상업 공간과는 거리가 있지만 태그호이어 뮤지엄도 꼽고 싶다.

루이비통 외에 셀린느, 태그호이어, 에스까다 등 다양한 명품 브랜드와 작업했다. 이런 명품 브랜드와 어떻게 네트워크를 형성했는가? 고백하자면 홍보에는 영 재능이 없다. 우리의 작업 결과물을 보고 브랜드에서 직접 연락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하는 일에 집중한다. 카번데일은 경쟁 공모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카번데일은 디자인에 브랜드 로고를 잘 활용하는 것 같다. 우리는 아마도 세계 최초로 건축물에 로고를 적용해 브랜딩 도구로 활용한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닐까 싶다. 브랜드의 가치와 정보를 내포한 공간을 방문한 소비자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주려 했다.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세계 각국에 여러 매장 디자인을 진행했다. 브랜드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지역적인 특성 또한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도쿄는 그 자체로 매우 수직적인 도시다. 대부분의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데 거부 반응이 없다. 반면 비벌리힐스 같은 곳은 대다수가 단층이다. 중동은 남녀 구분된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지역적인 특성은 매장 구조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상업 공간 디자인의 주기는 매우 짧다. 더구나 끊임없이 변한다.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특히 패션 브랜드가 그런 경향이 심하다. 공간 디자이너는 그저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새로운 솔루션을 제공할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가능성을 많이 열어둔 무언가를 하기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변화 요소를 찾으려고 한다.

트렌드를 읽는 방법이 있나? 트렌드는 시간이 지난 후에 매체가 분석해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혁신적인 디자인을 추구할 뿐 어떤 트렌드를 따라가거나 짐작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항상 열린 마음을 갖고 관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최근 모든 브랜드들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런 추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런 경향은 명품 브랜드의 리테일 디자인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 10년 동안 매장은 대형화됐다. 매장이 단순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넘어 하나의 집으로 변하고 있다. 여러 개의 방이 있는 구조다. 제품별로 방이 구분된다.

일본에서의 작업이 특히 많은 편이다. 일본에서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리 이름이 일본에 많이 알려진 편인데, 일본에는 건축에 대한 노력을 매우 존경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80번 이상 일본을 방문했음에도 일본 사람들과 비즈니스 이상으로 관계가 깊어지기는 힘들었다. 무엇보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를 겉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일본에서 루이비통은 아오키 준과 파트너십을 이뤄 작업하고 있다. 루이비통에서 근무하던 시절 나고야 매장을 위해 아오키 준을 처음 고용했다. 당시 젊은 건축가였던 아오키 준은 많이 알려지진 않았으나 좋은 작업을 보여주고 있었다. 루이비통은 전략적으로 유명하지 않으나 재능 있는 사람을 발굴해 신선한 디자인을 보여주려 한다. 아오키 준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리는 데는 그가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루이비통과의 작업이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작업은 어땠는가? 한국은 일본과 비교해 확연히 다르다. 훨씬 열성적이고 표현도 쉽게 한다. 완벽하게 조직화된 일본과 다소 헐거운 유럽의 중간 같다. 여러 사람이 모든 상황을 알아야 하는 프로세스가 일본과 비슷하지만 통제는 일본보다 덜하기에 문제에 대한 대응이 신속한 듯하다.

profile
1963년 미국 미시간(Michigan)에서 태어났다. 캔자스 주립대학(Kensas State University School of Architecture)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에 마크 맥, 렘 쿨하스, 오스카 투스케츠 등과 함께 일했다. 1997년 루이비통의 건축 디자인팀에서 7년 동안 디렉터로 지내며 전 세계 루이비통 매장 디자인을 담당했다. 2004년 독립해 명품 브랜드의 매장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카번데일을 설립했다. www.cbdarch.com

디자인하우스 (2010년 7월호) ⓒ Desig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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