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하나(HANA) 독일산 고급 무늬목으로 제작한 테이블과 의자. 디자인: 도시유키 기타
(오른쪽) 웨이브 하이(Wave Hi)
등받이 허리 부분에 돌출부를 둠으로써 허리를 받쳐주고 지압 효과 및 자세 교정을 유도한다.
디자인: 도시유키 기타(Toshiyukiki Kita)
카페 체어(Cafe Chair)와 테이블벤텍은 의자의 앞다리, 팔걸이, 등판을 이음매 없이 하나로 만들면서 교차되는 연결 부위에 생기는 빈 공간에 목재 쐐기를 넣는 ‘쐐기 공법’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디자인: 도시유키 기타(Toshiyukiki Kita)
1989년 설립한 벤텍 퍼니처(Bentek Furniture, 이하 벤텍)는 독자적인 고주파 곡면 성형 기술로 재료를 가공하고, 이를 이용해 자체 디자인한 가구를 생산한다. 벤텍의 고주파 곡면 성형 기술은 가구 재료로 쓰는 각종 베니어합판, MDF와 표면재, HPM과 LPM 등 얇은 자재를 10~30장씩 묶어 특수 접착제로 붙인 뒤 고주파 발진기에서 순간 고온(100~120℃) 및 고압(120~1,500kgf/cm²)으로 압착하는 방식이다. 고주파 곡면 성형은 2차 변형의 우려가 있어 정밀 제작한 목형이나 금형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등 아무나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고도의 기술이다. 벤텍 역시 이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2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나온 얇고 가벼운 재료는 유려한 곡면 구현이 가능하고, 인장 강도까지 높아 일반 원목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형태의 가구를 완성할 수 있다. 벤텍은 이와 함께 쐐기 공법과 완전 원형 몰딩 기술까지 더해 벤텍만의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30여 명의 직원을 보유한 국내의 작은 가구업체가 세계 가구의 본산 이탈리아에까지 이름을 알리고 있는 데는 이러한 수준 높은 기술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가구 제작 방식에서 영감을 얻다벤텍의 한기만 대표는 건축을 전공한 뒤 1972년부터 ‘가구밥’을 먹기 시작했다. 보루네오를 거쳐 에이스 침대로 옮겨 와 그곳에서 10년 동안 가구 부문의 생산・설계 및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는 클래식 가구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기술 연수를 떠났을 때 고주파 곡면 성형 기술을 처음 접했다. 이탈리아의 클래식 가구는 곡면이 많은 만큼 성형 합판을 자유자재로 쓰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프레임에 맞춘 합판을 못 박아 고정하고 본드로 접착한 뒤 나중에 그 못을 빼내는 정도의 기술만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는 고주파 곡면 성형 기술이 국내 가구 산업에 높은 비전을 안겨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1989년 벤텍(당시 레인보우가구)을 설립한 뒤 리바트, 한샘, 일룸 등 국내 가구업체를 상대로 OEM 생산을 맡아왔고, 이들의 수출을 통해 벤텍의 기술이 일본, 미국, 덴마크 등 가구 선진국에까지 알려지는 계기가 마련됐다. 아울러 얇고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가구 제작이 가능해져 현대・삼성・대우 중공업의 조선에도 벤텍 가구를 납품하는 등 ‘기술 좋은 회사’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1 클로버(Clover)
이탈리아 밀라노가구박람회,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등 국내외 많은 전시를 통해 알려진 작품이다. 디자인: 김선태
2 코끼리(Elephant)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어린이용 스툴을 디자인했다. 디자인: 데이비드 박
3 스텔스(Stealth)
너도밤나무를 사용해 제작했으며, 등받이 부분의 각진 형태가 스텔스 비행기를 연상시킨다. 디자인: 하지훈
4 네사(Nesa)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 교수인 안드레아 디치아라가 디자인한 의자. 디자인: 안드레아 디치아라(Andrea Dichiara)
5, 6, 7 이동식 보조 테이블, 하니콤 선반, 웨이브 벤치벤텍에서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업 이외에도 한기만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를 함께 선보이고 있다.
독자 브랜드 구축 위해 디자인을 만나다벤텍이 지금처럼 자체 브랜드를 갖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유명 브랜드를 엇비슷하게 흉내 낸 제품을 갖고 참여한 전시에서 관람객들에게 혹평과 야유를 접하고 이전부터 꿈꿔오던 독자 브랜드 구축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고가의 장비도 추가로 들여왔다. 특히 자체 브랜드 구축을 위해서는 디자인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한기만 대표는 벤텍이 보유한 고주파 곡면 성형 기술의 특성상 디자인이 그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기술과 디자인의 만남, 이것이 벤텍이 국내에 포진한 여러 곡면 성형업체, 그리고 가구 제작업체들과 차이를 갖는 결정적 이유다. 이후 데이비드 박, 오세환, 이상진, 하지훈, 김선태, 권순한 등 국내 유명 디자이너는 물론 안드레아 디치아라와 일본 가구 디자인의 대부 도시유키 기타 등 해외 디자이너들이 가세하며 벤텍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도시유키 기타는 이탈리아 밀라노가구박람회에 참여한 벤텍의 가구를 접하고 먼저 디자인 참여를 제안한 것이었다. 한편 가구 생산과 제작 운용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기만 대표 역시 직접 디자인에 참여하고 있다. 벤텍의 디자인에 대한 지원은 중소기업으로서는 매우 파격적이다. 제품에 대한 해당 디자이너의 외부 노출, 해외 디자이너와의 지속적인 협업 등 큰 가구업체도 하기 힘든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도시유키 기타의 제품 촬영을 위해서는 그의 요청에 따라 이탈리아에서 전담 포토그래퍼를 데려올 만큼 디자이너의 요구에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국내 가구 제조업체의 마지막 보루라는 자세로 임하다한기만 대표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바보같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익 창출이 없던 회사 초기는 물론 지금까지도 기술과 디자인에 끊임없는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유명 가구업체뿐만 아니라 대학교수까지 벤텍의 기술을 모방해 특허권을 침해하며 큰 피해를 입혔고, 경쟁 업체에서는 광고매체에 연간 광고를 미끼로 벤텍의 광고를 막으며 방해 작업도 펼쳤다. 그럼에도 벤텍이 투자와 개발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성형 가구에 대한 확신과 믿음 때문이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좌절하기보다는 벤텍만의 기술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자고 생각했다. 현재 국내 가구 산업은 좋은 소재는 물론 기계 설비와 인력 자원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지난 세월 인천을 중심으로 공장을 운영하던 대규모 가구업체들 역시 대부분 사업을 접고, 수입 가구 유통업으로 전환했다. 한기만 대표는 이런 국내의 열악한 가구 산업 환경에서 ‘우리 기술과 디자인으로 좋은 가구를 만들겠다’는 남다른 사명을 갖고 있다. 그는 스스로도 무모한 도전이라고 말하지만, 국내 가구 제조업체의 마지막 보루라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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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오세환 가구 디자이너
“고주파 곡면 성형 기술은 형태적 자유로움을 준다.”
벤텍과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나요? 2002년쯤 다른 가구업체의 붙박이장 프로젝트 때문에 벤텍을 처음 만났는데, 한기만 대표님과 곡면 성형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남다른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벤텍을 파트너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기술적인 노하우도 많았고, 열정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디자이너가 원하는 기술에 대해서 이해가 빨랐기에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고주파 곡면 성형 기술이 디자이너에게 어떤 매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무를 다루는 여러 기술 중 곡면 성형 기술은 ‘형태적 자유로움’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나무가 지닌 자연 재료적 특징을 유지하면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아이덴티티를 조형적으로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만큼 가구 디자이너에게는 매력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벤텍이 국내 가구업계와 가구 디자인계에 미치는 역할과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직 성형 가구 시장이 좁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벤텍은 지속적이고 독자적인 디자인 개발을 하고 있는 만큼 유명 브랜드 디자인을 모방하는 수준의 회사들과는 다른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 디자인 개발에 대한 부분도 언제나 열려 있어 디자이너로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벤텍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디자인 개발은 단시간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부분인 만큼 좀 더 신중하게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법도 점차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오른쪽) 뫼비우스(Moebius) 뫼비우스 띠의 구조를 응용한 의자로 마치 등받이가 뒤집어진 듯 보인다. 유기적인 곡선 형태는 벤텍의 고주파 곡면 성형 기술로 인해 가능했다. 디자인: 오세환 |

1 벤텍의 완전 원형 몰딩 기술을 이용해 이음매 없는 의자를 제작하는 장면.
2 업계 최초로 도입한 3차원 800mm CNC 및 성형 기계. 오늘날 벤텍의 독자적인 기술과 디자인은 끊임없는 투자에서 기인한다.
3 벤텍의 고주파 곡면 성형 기술은 가구 재료로 쓰이는 각종 베니어합판, MDF와 표면재, HPM과 LPM 등 얇은 자재를 10~30장씩 묶어 특수 접착제로 붙인 뒤 고주파 발진기에서 순간 고온 및 고압으로 압착함으로써 유기적인 곡면 제작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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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벤텍 퍼니처 대표 한기만
"생명이 긴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성형 가구 회사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에이스 침대에서 10년 정도 가구 부문의 생산・설계 및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1982년쯤 클래식 가구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연수를 떠나게 됐어요. 당시 이탈리아의 곡면이 많은 클래식 가구 회사들은 성형 합판을 만들고 거기에 조각을 붙여 문짝이나 콘솔 등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성형 가구를 접한 뒤 언젠가는 저 일을 내가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회사를 설립할 때 주변에서 “아직도 제조업하냐”는 말도 들었지만, 성형 가구에 대한 비전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오랫동안 회사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던 만큼 설비 투자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회사를 처음 설립하고 10년쯤 지나고 나니 회사를 좀 더 확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 위해 30억 원 정도 투자해 해외에서 성형 제작 설비를 들여왔습니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300억 원에 가까운 거액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고가의 장비가 있어도 이것을 활용할 줄 아는 기술자가 국내에는 없었습니다. 이익 창출이 거의 없던 시기였던 만큼 모든 것이 힘들었습니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서도 설비에 많은 투자를 하자 주변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했지만, 돈을 아끼고 싶다면 개발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독자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회사를 설립한 이후부터 계속 생각해오던 것이지만, 가구 전시에 참여하면서 그 생각이 더욱 강해졌어요. 초기에는 해외 유명 브랜드의 가구를 모방한 것이 많았는데, 관람객들로부터 혹평을 듣고 기분이 많이 상했죠. 이후 독자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오세환, 이상진, 김선태 디자이너 그리고 도시유키 기타 등 해외 디자이너들과 협력함으로써 이제는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벤텍만의 제품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벤텍은 디자이너 개인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들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야 디자이너도 더욱 신이 나서 더 좋은 디자인을 할 수가 있어요. 벤텍은 ‘디자이너의 외부 노출’ ‘해외 디자이너 영입’ 등 업계 최초의 타이틀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제작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결국 벤텍의 몫이겠죠. 그래서 소재 관리와 마감 등 제작의 전 과정을 세심하고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대학생도 지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회에 나가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벤텍의 고객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금까지 100여 명의 디자이너들을 지원해왔습니다. 좋은 디자인이 있으면 목형 틀을 무료로 제작해줘 이를 이용해 전시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디자이너와의 교류를 더욱 넓혀갈 것입니다. 이를 통해 벤텍 역시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제가 가진 능력에 비해 무리한 것은 아닌지, 너무 앞서간 것은 아닌지 후회도 많이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잘 정진하면 명예와 돈을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생명이 긴 브랜드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죠. 계속해서 최고의 기술로 우리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며, 이제 여기에 더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앞으로 유통 시스템도 체계적으로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용산 아이파크몰과 방배동, 명일동에 직매장을 열었습니다. 벤텍은 앞으로도 더 좋은 가구를 더 좋은 가격에 제공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